“퇴각은 없다.” 이 한마디로 바다를 지킨 장수, 동습(董襲). 삼국지 속 무장 중에서도 수군 방어의 상징으로 남은 인물입니다. 그는 단순한 전투병이 아닌 전략가이자 충절의 표본이었습니다. 맹충함 줄을 끊으며 황조군의 해상 전력을 무너뜨린 그, 그리고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다 바다에서 전사한 노장의 모습에서 우리는 군인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정사 『삼국지』 본기와 주석을 중심으로 동습의 주요 전투 활약과 전략적 판단,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수군 방어 시스템의 구조를 함께 분석합니다.
1. 손책과 함께한 초기 정벌, 동습의 출발점
회계군 출신 동습은 손책의 강동 정벌 당시 고천정에서 도적을 베고 군공을 세우며 '별부사마'로 임명됐습니다. 키 8척(약 184cm), 힘과 용맹으로 이름을 날렸고, 손권이 후계자가 된 후에도 그의 충절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태비가 손권의 집권을 염려하며 조언자를 찾자 동습은 “백성과 지리가 이미 안정되었으니 걱정하지 마소서”라 하며 국가적 신뢰감을 불어넣었습니다.
2. 황조 정벌: 맹충함을 끊은 돌격의 전술
208년 황조를 토벌하는 해전에서, 동습은 목숨을 건 돌격으로 맹충함의 연결 줄을 끊었습니다. 이는 황조군의 해상 방어를 무너뜨린 결정적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이중 갑옷을 입고 적선에 접근, 방어망을 직접 절단하여 심리적·전술적 승기를 잡았습니다.
전투 후 손권은 “이 잔은 줄 끊은 자를 위한 것”이라며 동습에게 공로를 돌렸고, 연회 자리에서 그의 활약을 모두에게 칭송했습니다.
3. 유수 방어: 수군 지휘관의 마지막 임무
217년 조조의 대공세 속에서, 동습은 유수에서 다층 군함 위에 병력을 배치해 조조군의 수로 진입을 막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는 거센 폭풍과 파도 속에서도 퇴각을 거부하고 전선에 남아 끝내 전사했습니다.
그의 장렬한 전사에 손권은 직접 장례를 주관하고 관을 씻어주며 “이 충신을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동오 역사에서 드물게 기록된 최고 예우였습니다.
4. 동습의 전략: 수군 방어의 교본
그의 수로 방어 전략은 고도로 계산된 공간 통제 기술이었습니다. 좁은 수로 입구에 함선을 배치하고, 진지를 다층 구조로 짜 배의 전복 가능성을 최소화했습니다. 기습보다 방어에 중점을 두되, 결정적 순간에는 돌격을 택한 유연성이 돋보입니다.
또한, 군법을 중시하며 병사들에게 일관된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장수가 먼저 도망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장수다운 본분을 몸소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5. 현장에서 체험하는 동습의 결단
오늘날 중국 안휘성 유수(濡須) 일대는 삼국 수군 전투의 핵심 지역입니다. 좁은 수로와 낮은 수심, 해풍 많은 기후 조건은 수군 전술을 이해하기에 최적입니다.
답사자는 실제 수로에 서서 동습이 어떤 시야에서 배치를 지시했는지, 폭우 속에서도 어떻게 전투를 유지했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전략과 공간이 결합된 ‘체감형 역사 교육’의 장으로서 유수 전장은 살아 있습니다.
6. 정사와 야사 속에서 그려지는 동습
정사에서는 그의 전투 공적과 전사 기록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으나, 후대 야사에서는 그가 보여준 결단과 돌격이 더욱 강조되며 ‘노장 영웅’의 대표 이미지로 자리잡았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맹충함 절단 장면이 극적으로 부각되며, 손권의 신뢰와 해상 영웅으로서의 모습이 강화되어 대중적 인지도 역시 높아졌습니다.
맺음말: 충성과 전략의 상징, 동습
동습은 단순한 무력이 아닌 전략적 판단, 군법의식, 끝까지 배를 지킨 책임감으로 동오 수군의 정신을 대표합니다. 그는 삼국지에서 가장 돋보이는 충성 장수 중 하나이며, 현대적으로는 ‘책임을 다한 군인’의 모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유수의 물길 위에 서서, “나에게 맡겨진 배는 끝까지 지킨다”는 그의 결단을 직접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